문중소식
ㆍ작성자 관리자
ㆍ작성일 2020-09-29 (화)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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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각에 대한 이해
O 지난 여름에 태풍과 폭우로 담장이 무너져 보수하였던 영성각에 대해서
이해를 돕고자 간략하게 소개하는 글을 올려 드립니다.

영성각은 나림 세장산 신걸산에 모셔져 있는 여러 조상님들 제사를 모시는 아주 중요한 우리 문중의 제각입니다. 종원님들의 영성각에 대한 이해에 참고가 되셨으면 합니다.
                                                                     (정보위원 임양성 올림) 
  
전남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21번지 옛 국도 1호선 옆 신걸산 입구에 위치해 있습니다.  

자(字)가 덕함(德涵)이며 호(號)가 창계(滄溪)인 임영(20세 林泳 1649~1696) 선생은 나림문중에서 호당(湖堂 : 학문이 뛰어난 사람에게 준 사가독서를 말함)에 뽑히신 두 분중의 한 분이십니다. (또 한 분은 노촌공(老村公) 휘 상덕(象德) 공이십니다)

장성의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과 더불어 호남 3대학자로 칭송받고 계신 분으로 임문(林門)에서 배출한 가장 현달한 학자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창계서원(滄溪書院)은 창계공을 봉향한 서원입니다. 제향일(祭享日)은 음력 9월9일이며, 함평 수산사(水山祠)에서도 봉향되고 있습니다. 

창계공은 정자공파 유호공(柳湖公)계로서 18세 몽촌공(夢村公) 휘 타(㙐, 상주목사) 공의 손자이시며, 증(贈) 이조참판 휘 일유(一儒) 공의 4남4녀 중 3남이십니다. 특히 동생 매계공 임정(林淨, 강화유수) 공과의 형제간 우애는 유명하여 널리 잘 알려져 있습니다.

창계공의 힉문은 송시열, 송준길에게 사사한 기호학파(畿湖學派) 학자이었으나 이기론(理氣論 ; 성리학)에 있어서는 이이(李珥)의 학설과 다른 견해를 제시하여 이황(李滉)과 이이의 절충적인 입장에 섰습니다. 뜻이 크고 박식하여 소성(小成)에 만족하지 않고 천인성명설(天人性命說)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경전(經傳)과 역사서에 두루 정통하였고 제자백가의 글에도 밝았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저서로 시문집 『창계집』이 있는데 1708년(숙종 34년) 동생 매계공이 48세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형님 창계공을 기려서 편집, 간행하였으며, 총 27권 14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 『창계집』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번역하여 『한국문집번역총서』8권으로 출간되어 있습니다.

창계서원은 창계공께서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조정랑, 검상,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 참판에 이르렀으나 일생을 학문 연구에 힘써 큰 업적을 남기심으로 길이 추모하고 사표(師表)로 삼고자 처음 1711년(숙종 37년) 회진에 서원을 창건하였습니다.


1767년(영조 43년) 중건하면서 신걸산 아래 현 위치로 옮겼으며 아우인 매계공(梅溪公) 휘 임정(林淨)의 초상화를 모신 영당(影堂)도 함께 경내에 세웠습니다. 매계공의 초상화는 당대에 그려진 것으로 매우 역사가 깊습니다. 신도비는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이덕수(李德壽)가 글을 짓고 근현대 서예가 김응현(金應顯)이 글씨를 썼습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창계서원이 훼철당하자 1907년 서원 터에 영성각을 세웠으며 1963년 중수하였습니다.

영성각은 신걸산에 모셔져 있는 10세 소윤공 휘(諱) 봉(鳳), 12세 시정공 휘(諱) 석주(碩柱), 13세 참의공 휘(諱) 귀연(貴椽), 14세 참판공 휘(諱) 평(枰), 15세 귀래정공 휘(諱) 붕(鵬), 16세 장수공 휘(諱) 익(益), 정자공 휘(諱) 복(復), 절도공 휘(諱) 진(晉), 첨지공 휘(諱) 몽(蒙), 17세 감역공 휘(諱) 개(愷), 석촌공 휘(諱) 서(㥠), 백호공 휘(諱) 제(悌) 등의 묘소를 관리하고 묘제를 지낼 때 사용하고 있는 나림문중의 세장산 제각(祭閣)입니다. 
 
 신걸산의 세장산 제각은 원래 영사재(永思齋)란 이름으로 장수공 묘역 아래쪽인 군장동(軍蔣洞)에 있었으나 이 제각이 인가에서 멀리 떨어져 불편하다 하여 현 위치로 옮겼다고도 전해집니다.
영사재는 장수공께서 장수현감 재임 중 신축한 제각에 도착하여 나림문중의 숙원이었던 제각을 장손(長孫)으로서 너무도 감격에 겨워 쓰셨던 "夜與弟姪共臨永思齋 : 밤에 이르러 아우, 조카들과 영사재에 도착해서) 시(詩) 에도 나오는데 나림문중의 최초의 제각이며, 귀래정공 생전에 건립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사재(永思齋)는 1900년대를 전후로 소실된 것으로 구전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창계서원 건물은 1963년에 중수하였는데, 규모는 기와로 이은 팔작지붕 6가(架) 5간으로 동서(東西) 2방(房)에 대청이 있으며 출입문으로 솟을 대문을 설치했습니다.

 
영성각의 후면으로 창계서원의 신실(神室)이 복원되어 있고 측면으로는 매계공(梅溪公) 영당(影堂)이 있습니다. 2003년 선생의 위패를 모시는 창계사와 건순문이 중건되었으며, 기존의 건물인 영성각은 서원의 강당으로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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